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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알기] 하얀띠 과정

'제주 추사관' 김정희 유적지, 제주도 유배지 체험

 

제주도 조랑말[출처 : Pixabay, 위키백과]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 반만년(5천년) 역사에서 제주도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서울로가야 하고, 그 역사의 줄기에서 밀려난 사람은 산 넘고 물건너 제주도로 보내진다. '말'이나 잘 크는 제주도로 유배!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우리 역사에서 제주도는 참 먼곳이었다. 더 이상 중앙 정치로 발 내밀지 말라는 의미이다.

추사 김정희 유배 행렬 재현, 대정 사거리[출처 : 한겨래 블로그]

 하지만, 당시의 제주도 유배 정책은, 제주도에 역사적 흔적을 남겨주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제주도민들에게는 아리러니 하게도 고마운 일이된다. 어쩌면, 우리 역사에 '외딴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한때 나라를 주름잡던 유능한 인재들의 발자취가 남겨지게 되었으니...

'추사 김정희'도 그 중에 한명이다. 제주도의 한적한 어느 마을, 추사 유적지에서 그의 숨결을 진하게 느껴 본다.

 

세한도[정희 유적지에서 촬영]

세한도, 추사의 대명사인 이 한편의 그림. 유배지에서 힘겨웠던 삶을 문의의 기개로 풀어내었다. 비록, 제주도에 있는 김정희 유적지에 세한도는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지만... 우리같은 범인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교과서에서난 보던 그림을 직접 마주한다는 건, 또 다른 느낌이다.

세한도 : 조선 헌종 때 추사 김정희가 그린 그림으로 국보 180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는 23cm*69.2cm[1] 이 그림은 추사가 귀양 시절 제자 이상적[2]이 북경에서 귀한 서책 120권 79책의 황조경세문편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추사 김정희가 소나무와 잣나무를보고 "가장 추울때도 너희들은 우뚝 서있구나" 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그림이다.[출처 : 나무위키]
1. 추사관 찾아가는 길

주소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관람 : 매일 09:00 ~ 18:00(입장 17:30)
관람료 : 무료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되면서 머물던 곳. 추사 김정희는 이 곳에 머물면서 국보 제 180호인 완상세한도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김. 이 곳에는 유배 당시 머물던 생가와 편지, 시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음[출처:제주관광공사]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면 위사진과 같은 곳에 도착하게된다. 뭐야? 어디 주차하라는 거야? 자세히 보니 주차장입구는 반대편이란다. 네비게이션 찾을때 '추사관 주차장'으로 찾아야겠다. '추사관, 김정희 고택, 추사 유배지' 등으로 찾아가면 살짝 당황.. 조금 돌아가서 주차해야한다. 하지만, 주차장이 좀 떨어져 있다고 투덜거리지 말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아름답고 운치있는 돌담길을 걸어오라는 깊은 뜻(?)이 있다고 믿는거다.^^ 한라산 화산 폭발로 생성되었다는 화산섬 제주도! 여기에 유독많은, 검은 빛깔에 표면에 구멍이 숭숭난, '현무암' ! 이 현무암으로 쌓아올려진 돌담길 따라 추사관으로 향한다. 음~ 백만년전 과거를 옆에 두고, 현대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여행와 스토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라 생각하고,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처보자!

눈치 보지 않고 현실을 즐길 수 있는 건, 젊음의 상징인 듯 하다. 녀석들은 주저 없이 올라가 멋진 사진 하나 만든다.
(물론, 훼손시키는거나 위험한 행동은 안된다)

돌담길을 지나면 바로 옆으로 추사관 건물이 보인다. 간결하고 힘있는 모습이 마치 추사체를 건축디자인에 반영한듯 하다. 멋난다!

2. 추사관 속으로~~

입구부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휠체어길을 한귀퉁이에 설치한 시설은 많지만, 이렇게 중앙을 가로지르며 당당하게 설계된 시설은 흔치 않으리라. 추사 김정희가 중앙정치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오게되었으니, 그도 역시 약자라고 보면 추사를 기념하는 건물에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출입문 바로 우측에 서예 체험장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한획 그어 보는것도 재미있겠다. 소시적에 다들 한번쯤 붓글씨 써봤을테니 옛기억을 소한해 보자!

다만, 1인 1매 사용과 정리정돈은 유의하자. 아이들과 동반했다면 더 유념해야겠다.

이제 천천히 추사관 내부를 관람해 보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초상화에서 그의 문인으로서 삶을 떠올려 보고,

넓은 공간 속, 외로이 서 있는 흉상에서 문인이자 예술가였던 추사의 예술혼을 공감해 본다.

그가 남겨 놓은 여러 글씨들을 살펴보곤, 다시금 존경심을 불태운다. 너무나 악필인 나에게 추사의 글씨체는 다른 세상이다.(컴퓨테로 찍어 놓은것 같다)
그리고.....

햇살을 가르며 당당히 서있는, 누가봐도 특별할것 같은 저 글 '판전'!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이다. 별세(1786 ~1856) 하기 3일전에 썼다고 알려진 글! 그래서 일까? 단지 두자의 글을 보는 것일진데. 무겁다! 웅장하고, 신비롭다. 그의 모든 삶을 담아낸듯 아름답다.

서울 봉은사 '판전'의 현판으로 여전히 그 원본이 유지되고있다고 하니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

3. 유배 생활의 아픔을 보다.
추사관을 다 둘러 봤으면, 이제 유배지의 흔적을 찾아 볼 차례다.

유배지 나가는 길이란 표지판을 따라 지상으로 나가본다.

뭐지?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는 풍경이지, 그냥 지나치지 말자!

가시나무다. 유배지 집 주변을 에워쌓고있는 가시나무.

저멀리 바다 건거 제주에 가시나무로 둘러쌓인 집. 유배자의 생활이다.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씁쓸하다.
인생무상... 한때의 화려함이 기시덤불속에 묻힌다

유배지 집을 재구성해 놓은곳을 보니 규모는 일반 서민들의 초가집 보다는 조금 커 보인다

돗통(화장실, 뒷간)은 돼지를 키우며 거름을 마련했던 제주도의 전통방식이다. 육지 사람들이 잘 적응했을지 의문이다. 대변을 볼때 꿀꿀거리며 다가오는 돼지가 연간신경쓰이고 무섭기까지할텐데 말이다

이렇게 아픔을 간직한 예술가 추사 김정희 유적지 관람을 끝낸다.

유배자의 삶은 이렇게 추사관 내부의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일까?
평상시 생활보다 많이 불비한 환경에서도, 선비로서 예술가로서의 혼을 잃지않고 살다가신 추사의 흔적에 다싷한번 존경과 감사를 담아 보낸다